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니라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 병이 나을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1. 애통하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은 에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희스기야는 예배의 회복자였다. 그는 죽음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도로 움직인 사람이다. 하나님이 해를 돌리는 것을 증표로 보여주겠다고 스스로 약속하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받은 사람이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애통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 부터 스스로 하시는 약속과 축복을 얻은 자이다.
그는 심히 통곡하였는데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근거가 바로 내가 하나님앞에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였던것 ,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것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하게 행하였다. 다르게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눈에 옳게 행하였다는 것이다.
(대하 29: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앞에 의롭게 행한것을 행위의 의로움만으로 생각을 하면 아무도 그 앞에 자유로울수 없다. 히스기야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음으로 다시 고난의 길로 들어가는 것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그이 삶에도 그렇게 쓰러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가 붙들었던것은 어떤 부분인가? 내가 하나님을 끝까지 구원자로 의지하며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수 있음을 신뢰한 부분을 하나님께 아뢰며 애통한 것이다.
애통함이 축복이다. 무엇을 애통해야 하는가?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를 찾으신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보고는 애통한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는게 더 의로울텐데 저렇게 살면 않되는데 라는 애통은 많이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보면서는 애통하지 못한다. 진실한 애통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오히려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 인정으로만 머문다면 인간은 분명히 자신이 그 죄를 해결해 보려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금식하는 자기주도적 죄의 해결책을 찾는 신앙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된다.
기도하고 예배하는것 금식하는 것이 좋은 것이나 그것이 내가 이것을 더 많이 하므로 내죄를 해결할수 있다는 생각은 결국 다시 내 행위를 통해 내가 구원을 이룰수 있다는 굴레에 빠져 버리게 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단번에 해결하셨다. 그래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살라고 사명을 주셨다. 그래서 내가 통회해야 하는 것은 내가 죄인임과 동시에 내가 하나님을 찾는 마음으로 부터 점점더 멀어지려는 성향을 가진 자들임을 발견하고 더 하나님앞에 나아가야만 사랑해야만 내가 살수 있다는 것을 애통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히스기야의 애통함이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2. 성전을 수리하고 사재를 털어 하나님의 일을 함
히스기야는 성전을 수리하는데 앞장섰다. 물리적 성전을 수리하는데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성전을 수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을 다시 재건하려는 예배에 대한 회복의 열정이 있었던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성전의 수리의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히스기야는 개인 재산을 드려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 레위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직무를 회복시킨다. 그렇게 그가 드린 마음을 하나님께 서 받으시고 히스기야에게 삶에서도 드러나는 풍성한 복을 부어주셨다.
먼저 내안에 하나님의 복이 가득차야 한다. 복이 가득한 사람은 복된일을 한다. 복을 달라고 구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복된 백성의 약속을 받았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내 삶에 충만함을 발견하여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차 있음을 발견하는 새롭게 태어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대하 29:3)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하나님은 모든것 헌신을 갚아주시고 모든 희생을 알아주신다. 우리가 기대한것보다 더 많은 복으로 채워주신다.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복많이 진정한 복이 되며 하나님께로 부터 드러나는 복 많이 지속적으로 세대를 아우르며 이기적 공동체를 넘어 연합하는 합력의 장으로 이끌어 가게 된다.
나훔 1:7)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나 1:8)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 :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나는 삶
하나님의 정의는 우리가 복을 받은 이후에 어떻게 우리의 복을 흘려보내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 가는 가를 통해 드러난다. 우리가 회개 하지 못했을 때는 나만을 위해, 내 가족과 공동체와 나라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소경된 삶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없는 삶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유대인의 삶에서 어린 아이때 부터 저금통을 만들어 하나는 자기를 위하여, 하나는 이웃을 위해 만들고 이웃을 위해 만든 저금통에 “하나님의 정의”(체데카)라고 적는다.
하나님의 정의는 바로 이웃과의 관계안에 드러난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데로 남을 대접하는 선지자요 율법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내가 이웃과 별개가 아니라 나와 이웃은 하나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다.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형제를 사랑한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 형통한다 . 하나님 안에서 모든 화평을 이루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게 하신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내가 이웃과 별개가 아니라 나와 이웃은 하나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다.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형제를 사랑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히스기야는 성전수리에 진심이었고 , 전도대장이었으며 예배회복자였다. 그를 통하여 부와 영광이 지극한 사람으로 사람들의 눈앞에 그는 복된자로 드러나게 되었다.
대하 32: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대하 32: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대하 32:29)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대하 32:30)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이러한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진정한 복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우리가 되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감동하는 기도를 통한 기적의 축복을 누리라 -박정우 목사 - 2024-09-15
이사야 38:1-9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니라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 병이 나을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1. 애통하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은 에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희스기야는 예배의 회복자였다. 그는 죽음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도로 움직인 사람이다. 하나님이 해를 돌리는 것을 증표로 보여주겠다고 스스로 약속하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받은 사람이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애통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 부터 스스로 하시는 약속과 축복을 얻은 자이다.
그는 심히 통곡하였는데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근거가 바로 내가 하나님앞에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였던것 ,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것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하게 행하였다. 다르게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눈에 옳게 행하였다는 것이다.
(대하 29: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앞에 의롭게 행한것을 행위의 의로움만으로 생각을 하면 아무도 그 앞에 자유로울수 없다. 히스기야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음으로 다시 고난의 길로 들어가는 것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그이 삶에도 그렇게 쓰러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가 붙들었던것은 어떤 부분인가? 내가 하나님을 끝까지 구원자로 의지하며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수 있음을 신뢰한 부분을 하나님께 아뢰며 애통한 것이다.
애통함이 축복이다. 무엇을 애통해야 하는가?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를 찾으신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보고는 애통한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는게 더 의로울텐데 저렇게 살면 않되는데 라는 애통은 많이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보면서는 애통하지 못한다. 진실한 애통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오히려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 인정으로만 머문다면 인간은 분명히 자신이 그 죄를 해결해 보려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금식하는 자기주도적 죄의 해결책을 찾는 신앙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된다.
기도하고 예배하는것 금식하는 것이 좋은 것이나 그것이 내가 이것을 더 많이 하므로 내죄를 해결할수 있다는 생각은 결국 다시 내 행위를 통해 내가 구원을 이룰수 있다는 굴레에 빠져 버리게 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단번에 해결하셨다. 그래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살라고 사명을 주셨다. 그래서 내가 통회해야 하는 것은 내가 죄인임과 동시에 내가 하나님을 찾는 마음으로 부터 점점더 멀어지려는 성향을 가진 자들임을 발견하고 더 하나님앞에 나아가야만 사랑해야만 내가 살수 있다는 것을 애통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히스기야의 애통함이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2. 성전을 수리하고 사재를 털어 하나님의 일을 함
히스기야는 성전을 수리하는데 앞장섰다. 물리적 성전을 수리하는데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성전을 수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을 다시 재건하려는 예배에 대한 회복의 열정이 있었던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성전의 수리의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히스기야는 개인 재산을 드려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 레위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직무를 회복시킨다. 그렇게 그가 드린 마음을 하나님께 서 받으시고 히스기야에게 삶에서도 드러나는 풍성한 복을 부어주셨다.
먼저 내안에 하나님의 복이 가득차야 한다. 복이 가득한 사람은 복된일을 한다. 복을 달라고 구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복된 백성의 약속을 받았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내 삶에 충만함을 발견하여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차 있음을 발견하는 새롭게 태어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대하 29:3)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하나님은 모든것 헌신을 갚아주시고 모든 희생을 알아주신다. 우리가 기대한것보다 더 많은 복으로 채워주신다.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복많이 진정한 복이 되며 하나님께로 부터 드러나는 복 많이 지속적으로 세대를 아우르며 이기적 공동체를 넘어 연합하는 합력의 장으로 이끌어 가게 된다.
나훔 1:7)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나 1:8)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 :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나는 삶
하나님의 정의는 우리가 복을 받은 이후에 어떻게 우리의 복을 흘려보내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 가는 가를 통해 드러난다. 우리가 회개 하지 못했을 때는 나만을 위해, 내 가족과 공동체와 나라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소경된 삶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없는 삶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유대인의 삶에서 어린 아이때 부터 저금통을 만들어 하나는 자기를 위하여, 하나는 이웃을 위해 만들고 이웃을 위해 만든 저금통에 “하나님의 정의”(체데카)라고 적는다.
하나님의 정의는 바로 이웃과의 관계안에 드러난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데로 남을 대접하는 선지자요 율법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내가 이웃과 별개가 아니라 나와 이웃은 하나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다.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형제를 사랑한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 형통한다 . 하나님 안에서 모든 화평을 이루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게 하신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내가 이웃과 별개가 아니라 나와 이웃은 하나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다.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형제를 사랑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히스기야는 성전수리에 진심이었고 , 전도대장이었으며 예배회복자였다. 그를 통하여 부와 영광이 지극한 사람으로 사람들의 눈앞에 그는 복된자로 드러나게 되었다.
대하 32: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대하 32: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대하 32:29)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대하 32:30)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이러한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진정한 복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우리가 되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