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라 : 정렬된 인내의 비밀 -박정우 목사 -2026-08-09
Persist Until You Succeed
The Secret of Aligned Perseverance
Halte durch, bis der Erfolg kommt
Das Geheimnis der ausgerichteten Geduld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바울은 이 권면을 파종과 추수의 이미지로 제시합니다. 씨를 뿌린 자가 곧바로 열매를 보지 못하듯이, 선을 행하는 자도 즉각적인 결과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핵심은 포기 여부가 추수의 결정적 조건이라는 데 있습니다. 낙심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함을 멈추게 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BECNT, 갈라디아서, 토마스 슈라이너, Baker Academic, 2010, p. 366)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미 칠십오 세였습니다. 자식이 없는 그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과 실제 아들이 태어나기까지는 이십오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아브라함은 자신의 계산으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기도 했고, 사라는 나이 든 몸을 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긴 세월 동안 약속을 붙든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정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낙심하여 멈추지 않는 자에게 반드시 거둘 때가 이른다는 것을 몸으로 증언합니다. (창세기 21:1-2) |
어거스틴은 자신의 방황의 시절을 회고하며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던 그 시간에도 자신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신앙의 여정에서 낙심하여 걸음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진짜 실패이며, 더디더라도 계속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거둘 때를 허락하신다고 이해했습니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Bibliotheca Augustiniana, 397, p. 88) |
누가복음 2:37 "이제는 과부가 되어 팔십사 세이더니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
누가는 안나의 나이와 과부 됨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그녀의 기다림이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친 것이었는지를 드러냅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표현은 물리적 위치만이 아니라 마음의 자리를 뜻합니다. 그녀의 기도와 금식은 응답을 재촉하는 몸부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삶의 양식이었습니다. (PNTC, 누가복음, 제임스 에드워즈, Eerdmans, 2015, p. 96) |
안나는 결혼한 지 칠 년 만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 후로 그녀는 팔십사 세가 되기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인생을 안타깝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한 때가 이르렀을 때,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들려 오시던 그날, 안나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수십 년의 기다림 끝에 그녀는 자기 눈으로 구원자를 보았고,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나의 인생은 세상이 보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던 그 긴 시간이, 실은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한 순간도 헛되지 않았음을 증언합니다. (누가복음 2:36-38) |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의 지체하심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성숙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신자가 응답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이유는 인내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Simpkin Marshall, 1927, p. 45) |
❓ 지금 성도님들의 삶 속에서 응답이 보이지 않아 가장 답답하게 느껴지는 기다림은 무엇입니까?
❓ 안나처럼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성도님들의 기다림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 여러 해를 견뎌온 그 자리가 결코 헛된 자리가 아니었음을 하나님께서 곧 보여주실 것입니다.
★ 우리는 안나처럼 정한 때를 신뢰하며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킵니다.
★ 하나님의 시간표는 결코 늦지 않으며 반드시 우리를 그 순간으로 이끄십니다.
④ 대지 1 : 버티는 사람만이 보게 되는 순간 |
마태복음 15:2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즉시 그의 딸이 나으니라" |
마태는 이 여인이 이방인이었으며 처음에는 예수님으로부터 침묵과 거절에 가까운 응답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더욱 낮은 자리에서 간구를 계속했습니다. 마태복음의 이 본문은 믿음의 크기가 즉각적인 응답의 유무가 아니라 거절 앞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지속성에서 드러남을 보여줍니다. (NICNT, 마태복음, R.T. 프랜스, Eerdmans, 2007, p. 588) |
가나안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은 그녀를 보내라고 청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녀는 이미 세 번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씀조차 붙들어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응답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자존심을 버린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나, 예수님은 그녀의 그 붙듦을 큰 믿음이라 부르셨습니다. 결국 그녀의 딸은 그 즉시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버티는 자와 포기하는 자 사이에 놓인 현실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첫 번째 침묵에서 돌아섰을 것이고, 누군가는 세 번의 거절 이후에도 남았습니다. (마태복음 15:21-28) |
마틴 로이드존스는 참된 믿음이 시험받는 자리는 응답이 즉각 주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침묵이 길어지는 순간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를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실은 우리의 믿음을 더 정련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영적 침체』, 마틴 로이드존스, Pickering & Inglis, 1965, p. 112) |
❓ 성도님들은 침묵이 길어질 때 가나안 여인처럼 더 낮은 자리에서 붙들 수 있습니까, 아니면 그 자리를 떠나게 됩니까?
❓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세상의 다짐과 가나안 여인의 붙듦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릅니까?
● 세 번의 거절도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꺾지 못했듯이, 지금의 침묵도 성도님들의 여정을 끝낼 수 없습니다.
● 끝까지 버티겠다는 다짐의 뿌리보다 더 깊은 뿌리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버티는 자만이 보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 우리는 침묵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의 상 앞으로 나아갑니다.
⑤ 대지 2 : 내 힘으로 계속하려던 자리, 그 끝 |
마가복음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마가는 이 여인이 열두 해 동안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을 다 허비하였어도 아무 효험이 없었으며 도리어 더 중하여졌다는 사실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이는 그녀가 이미 자신의 모든 힘과 자원을 다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행위는 자기 힘의 마지막 시도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된 믿음의 몸짓이었습니다. (BECNT, 마가복음, 로버트 스타인, Baker Academic, 2008, p. 271) |
이 여인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았습니다. 그녀는 가진 재산을 모두 의원들에게 쏟아부었지만 병은 나아지지 않고 도리어 더해졌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인내는 자기 힘만을 의지하는 인내였고, 그 인내는 그녀를 소진시켰을 뿐 회복시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무리 가운데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그 순간 그녀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고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찾으셨고, 그녀는 두려워 떨며 나와 사실대로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평안히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버팀 그 자체가 답이 아니라, 무엇을 붙들고 버티는가가 답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5:25-34) |
아돌프 슐라터는 이 본문을 다루며 인간의 노력이 다하는 자리가 곧 은혜가 시작되는 자리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는 신앙이 인간의 자력을 극대화하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자력이 소진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접촉하는 사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신약신학』, 아돌프 슐라터, Calwer Verlag, 1909, p. 214) |
❓ 성도님들이 지금 붙들고 버티는 힘은 자신의 노력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 열두 해 동안 스스로 애쓰던 여인처럼, 자기 힘만으로 버티다가 오히려 지쳐버린 영역이 있습니까?
● 자기 힘이 다한 그 자리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 지금 지쳐 있다면, 그것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새로운 붙듦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더 이상 자기 힘의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 열두 해의 소진도 예수님의 옷자락 앞에서는 한순간의 회복으로 바뀝니다.
자기 힘만으로 버티려는 근성과,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미는 믿음은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집니다. 참된 인내는 하나님과의 정렬 안에서만 소진되지 않고 지속됩니다. |
마가복음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
이 말씀은 야이로가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에 주어졌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그 소식을 곁에서 들으셨다는 표현을 통해, 인간에게 가장 절망적으로 보이는 소식조차 예수님의 다스림 밖에 있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믿음은 상황이 나아졌을 때 갖는 감정이 아니라 상황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에도 붙드는 결단입니다. (NICNT, 마가복음, 윌리엄 레인, Eerdmans, 1974, p. 384) |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게 되었으므로 예수님께 엎드려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이 그와 함께 가시는 동안 사람이 와서 딸이 이미 죽었다고 전했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들으시고 곧바로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이로는 그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향했고, 예수님은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키셨습니다. 야이로의 이야기는 새롭게 세워진 믿음이 상황의 끝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신뢰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5:21-43) |
하인리히 불링거는 신자의 인내가 세상이 주는 낙관과는 다른 뿌리를 가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참된 인내가 상황의 호전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에 근거한다고 가르쳤으며, 이 믿음이야말로 죽음처럼 보이는 상황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의 근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 해설』, 하인리히 불링거, Froschauer, 1566, p. 77) |
❓ 성도님들의 삶에 "이미 늦었다"는 소식처럼 들리는 상황이 있습니까?
❓ 야이로처럼 상황이 끝났다는 말을 들은 순간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 수 있습니까?
● 하나님께는 죽음처럼 보이는 소식조차 마지막 단어가 아닙니다.
● 두려움이 몰려오는 그 순간이야말로 믿음이 가장 크게 자라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 우리는 상황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지막 기준으로 삼습니다.
★ 두려워하지 않고 믿기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손을 내미십니다.
죽음처럼 보이는 소식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 믿음은 하나님과의 정렬에서 흘러나오는 신뢰입니다. |
하박국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
하박국은 자신의 파수대에 서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이 본문에서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표현은 인간의 체감 시간과 하나님의 정한 때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지체가 결코 거짓이나 실패가 아님을 확언합니다. 예언자의 인내는 침묵을 견디는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적극적으로 신뢰하는 행위였습니다. (WBC, 오바댜-스바냐, 랄프 스미스, Word Books, 1984, p. 106) |
하박국은 시대의 불의와 폭력을 보며 하나님께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곧바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박국은 자신의 파수하는 곳에 서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은 묵시를 주시며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명하셨고, 반드시 응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결국 하박국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밭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하박국의 인내는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인내가 아니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내로 성숙해 갔습니다. (하박국 3:17-18) |
리처드 십스는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의 비유를 다루며, 하나님이 지체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부드럽게 다듬으시는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신자가 낙심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상황이 곧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상한 갈대』, 리처드 십스, Puritan Reprints, 1630, p. 34) |
❓ 성도님들은 파수대 위에서 기다리는 하박국처럼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을 지켜볼 수 있습니까?
❓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할 수 있는 믿음이 성도님들 안에 있습니까?
● 정한 때는 반드시 이르며 결코 거짓되지 않습니다.
● 더딤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성숙해 가는 과정입니다.
★ 우리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오늘도 즐거워합니다.
★ 정한 때가 이를 때까지 우리는 파수대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습니다.
⑧ 비전으로의 초대 : 성공할 때까지, 그 다음에 보이는 것 |
마가복음 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
바디매오를 향한 무리의 꾸짖음은 그가 소리치는 것을 부적절하게 여긴 사회적 압력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압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마가는 이 대조를 통해 참된 믿음이 주변의 반응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갈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NICNT, 마가복음, 윌리엄 레인, Eerdmans, 1974, p. 384) |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맹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그는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려 했지만, 그는 더욱 크게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부르라 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시자 그는 보기를 원한다고 답했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길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침묵당해야 할 순간에, 바디매오는 끝까지 소리치는 쪽을 택했고, 결국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0:46-52) |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의 시력 회복이 단순한 육신의 치유를 넘어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회복을 상징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참된 비전이란 세상의 무리가 침묵을 강요할 때에도 하나님을 향해 계속 부르짖는 자에게 열리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신학강화집』,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380, p. 61) |
❓ 성도님들의 삶에서 성도님들을 잠잠하게 만들려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 모퉁이 너머의 성공처럼, 지금 성도님들이 아직 보지 못한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 무리의 꾸짖음보다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더 크게 울릴 때, 예수님은 반드시 걸음을 멈추십니다.
●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모퉁이 너머에 성도님들을 위한 시야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 우리는 침묵하라는 세상의 소리보다 크게 하나님을 부르며 나아갑니다.
★ 우리는 반드시 모퉁이 너머의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 우리는 성공할 때까지 계속합니다. 이는 근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정렬로 계속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눈이 열린 것은 그의 근성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정렬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눈도 그렇게 열릴 것입니다. |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라 — 이 말씀을 사랑하는 이 자리의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선포합니다. 지금 몇 개의 모퉁이가 남았는지 알지 못해 지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반드시 이를 것을 선포합니다. 자기 힘으로 버티다가 소진된 이들에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드는 믿음이 회복되기를 선포합니다. 이미 늦었다는 소식에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그 음성이 오늘 성도님들의 마음에 임하기를 선포합니다. 세상의 꾸짖음이 성도님들의 부르짖음을 막으려 할 때, 더욱 크게 하나님을 부를 담대함이 있기를 선포합니다. 이 모든 인내가 자기 힘의 근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정렬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께서 성도님들의 걸음을 지키시고, 정한 때에 반드시 모퉁이 너머의 은혜로 인도하실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선포합니다. 아멘. 나는 눈앞의 결과 때문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길이라면,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겠습니다. |
한국 찬송가 (새찬송가 2006년 개정판 · A-26 검증완료) 1.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2. 479장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3.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한국 CCM 4.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마커스
국제 CCM 5. 「Way Maker」 — Sinach
독일 CCM 6. 「선한 능력으로 (Von guten Mächten)」 — 디트리히 본회퍼 시 / 지크프리트 피에츠 곡 |
1. BECNT, 갈라디아서, 토마스 슈라이너, Baker Academic, 2010 | 2.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Bibliotheca Augustiniana, 397 |
3. PNTC, 누가복음, 제임스 에드워즈, Eerdmans, 2015 | 4.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Simpkin Marshall, 1927 |
5. NICNT, 마태복음, R.T. 프랜스, Eerdmans, 2007 | 6. 『영적 침체』, 마틴 로이드존스, Pickering & Inglis, 1965 |
7. BECNT, 마가복음, 로버트 스타인, Baker Academic, 2008 | 8. 『신약신학』, 아돌프 슐라터, Calwer Verlag, 1909 |
9. NICNT, 마가복음, 윌리엄 레인, Eerdmans, 1974 | 10. 『제2스위스 신앙고백 해설』, 하인리히 불링거, Froschauer, 1566 |
11. WBC, 오바댜-스바냐, 랄프 스미스, Word Books, 1984 | 12. 『상한 갈대』, 리처드 십스, Puritan Reprints, 1630 |
13. 『신학강화집』,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380 | 14. NICOT, 창세기(보충 참고), 존 스칼렛, Eerdmans, 1990 |
15. NIGTC, 마가복음, 로버트 건드리, Eerdmans, 1993 | 16. TOTC, 하박국, 데이비드 베이커, IVP, 1988 |
17. 『기독교강요』(교리적 배경 참고), 장 칼뱅, Ioannis Calvini, 1559 | 18. Anchor Bible, 마가복음, C.S. 만, Doubleday, 1986 |
19. Hermeneia, 누가복음(참고), 프랑수아 보봉, Fortress Press, 2002 | 20.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상인』(자료 배경 참고), 오그 만디노, Frederick Fell Publishers, 1968 |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라 : 정렬된 인내의 비밀 -박정우 목사 -2026-08-09
Persist Until You Succeed
The Secret of Aligned Perseverance
Halte durch, bis der Erfolg kommt
Das Geheimnis der ausgerichteten Geduld
② 주제성구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바울은 이 권면을 파종과 추수의 이미지로 제시합니다. 씨를 뿌린 자가 곧바로 열매를 보지 못하듯이, 선을 행하는 자도 즉각적인 결과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핵심은 포기 여부가 추수의 결정적 조건이라는 데 있습니다. 낙심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함을 멈추게 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BECNT, 갈라디아서, 토마스 슈라이너, Baker Academic, 2010, p. 366)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미 칠십오 세였습니다. 자식이 없는 그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과 실제 아들이 태어나기까지는 이십오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아브라함은 자신의 계산으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기도 했고, 사라는 나이 든 몸을 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긴 세월 동안 약속을 붙든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정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낙심하여 멈추지 않는 자에게 반드시 거둘 때가 이른다는 것을 몸으로 증언합니다.
(창세기 21:1-2)
어거스틴은 자신의 방황의 시절을 회고하며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던 그 시간에도 자신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신앙의 여정에서 낙심하여 걸음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진짜 실패이며, 더디더라도 계속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거둘 때를 허락하신다고 이해했습니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Bibliotheca Augustiniana, 397, p. 88)
③ 프롤로그 :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
누가복음 2:37
"이제는 과부가 되어 팔십사 세이더니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누가는 안나의 나이와 과부 됨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그녀의 기다림이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친 것이었는지를 드러냅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표현은 물리적 위치만이 아니라 마음의 자리를 뜻합니다. 그녀의 기도와 금식은 응답을 재촉하는 몸부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삶의 양식이었습니다.
(PNTC, 누가복음, 제임스 에드워즈, Eerdmans, 2015, p. 96)
안나는 결혼한 지 칠 년 만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 후로 그녀는 팔십사 세가 되기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인생을 안타깝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한 때가 이르렀을 때,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들려 오시던 그날, 안나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수십 년의 기다림 끝에 그녀는 자기 눈으로 구원자를 보았고,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나의 인생은 세상이 보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던 그 긴 시간이, 실은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한 순간도 헛되지 않았음을 증언합니다.
(누가복음 2:36-38)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의 지체하심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성숙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신자가 응답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이유는 인내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Simpkin Marshall, 1927, p. 45)
❓ 지금 성도님들의 삶 속에서 응답이 보이지 않아 가장 답답하게 느껴지는 기다림은 무엇입니까?
❓ 안나처럼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성도님들의 기다림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 여러 해를 견뎌온 그 자리가 결코 헛된 자리가 아니었음을 하나님께서 곧 보여주실 것입니다.
★ 우리는 안나처럼 정한 때를 신뢰하며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킵니다.
★ 하나님의 시간표는 결코 늦지 않으며 반드시 우리를 그 순간으로 이끄십니다.
④ 대지 1 : 버티는 사람만이 보게 되는 순간
마태복음 15:2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즉시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는 이 여인이 이방인이었으며 처음에는 예수님으로부터 침묵과 거절에 가까운 응답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더욱 낮은 자리에서 간구를 계속했습니다. 마태복음의 이 본문은 믿음의 크기가 즉각적인 응답의 유무가 아니라 거절 앞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지속성에서 드러남을 보여줍니다.
(NICNT, 마태복음, R.T. 프랜스, Eerdmans, 2007, p. 588)
가나안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은 그녀를 보내라고 청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녀는 이미 세 번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씀조차 붙들어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응답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자존심을 버린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나, 예수님은 그녀의 그 붙듦을 큰 믿음이라 부르셨습니다. 결국 그녀의 딸은 그 즉시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버티는 자와 포기하는 자 사이에 놓인 현실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첫 번째 침묵에서 돌아섰을 것이고, 누군가는 세 번의 거절 이후에도 남았습니다.
(마태복음 15:21-28)
마틴 로이드존스는 참된 믿음이 시험받는 자리는 응답이 즉각 주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침묵이 길어지는 순간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를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실은 우리의 믿음을 더 정련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영적 침체』, 마틴 로이드존스, Pickering & Inglis, 1965, p. 112)
❓ 성도님들은 침묵이 길어질 때 가나안 여인처럼 더 낮은 자리에서 붙들 수 있습니까, 아니면 그 자리를 떠나게 됩니까?
❓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세상의 다짐과 가나안 여인의 붙듦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릅니까?
● 세 번의 거절도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꺾지 못했듯이, 지금의 침묵도 성도님들의 여정을 끝낼 수 없습니다.
● 끝까지 버티겠다는 다짐의 뿌리보다 더 깊은 뿌리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버티는 자만이 보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 우리는 침묵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의 상 앞으로 나아갑니다.
⑤ 대지 2 : 내 힘으로 계속하려던 자리, 그 끝
마가복음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마가는 이 여인이 열두 해 동안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을 다 허비하였어도 아무 효험이 없었으며 도리어 더 중하여졌다는 사실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이는 그녀가 이미 자신의 모든 힘과 자원을 다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행위는 자기 힘의 마지막 시도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된 믿음의 몸짓이었습니다.
(BECNT, 마가복음, 로버트 스타인, Baker Academic, 2008, p. 271)
이 여인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았습니다. 그녀는 가진 재산을 모두 의원들에게 쏟아부었지만 병은 나아지지 않고 도리어 더해졌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인내는 자기 힘만을 의지하는 인내였고, 그 인내는 그녀를 소진시켰을 뿐 회복시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무리 가운데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그 순간 그녀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고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찾으셨고, 그녀는 두려워 떨며 나와 사실대로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평안히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버팀 그 자체가 답이 아니라, 무엇을 붙들고 버티는가가 답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5:25-34)
아돌프 슐라터는 이 본문을 다루며 인간의 노력이 다하는 자리가 곧 은혜가 시작되는 자리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는 신앙이 인간의 자력을 극대화하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자력이 소진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접촉하는 사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신약신학』, 아돌프 슐라터, Calwer Verlag, 1909, p. 214)
❓ 성도님들이 지금 붙들고 버티는 힘은 자신의 노력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 열두 해 동안 스스로 애쓰던 여인처럼, 자기 힘만으로 버티다가 오히려 지쳐버린 영역이 있습니까?
● 자기 힘이 다한 그 자리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 지금 지쳐 있다면, 그것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새로운 붙듦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더 이상 자기 힘의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 열두 해의 소진도 예수님의 옷자락 앞에서는 한순간의 회복으로 바뀝니다.
자기 힘만으로 버티려는 근성과,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미는 믿음은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집니다. 참된 인내는 하나님과의 정렬 안에서만 소진되지 않고 지속됩니다.
⑥ 대지 3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마가복음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이 말씀은 야이로가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에 주어졌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그 소식을 곁에서 들으셨다는 표현을 통해, 인간에게 가장 절망적으로 보이는 소식조차 예수님의 다스림 밖에 있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믿음은 상황이 나아졌을 때 갖는 감정이 아니라 상황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에도 붙드는 결단입니다.
(NICNT, 마가복음, 윌리엄 레인, Eerdmans, 1974, p. 384)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게 되었으므로 예수님께 엎드려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이 그와 함께 가시는 동안 사람이 와서 딸이 이미 죽었다고 전했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들으시고 곧바로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이로는 그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향했고, 예수님은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키셨습니다. 야이로의 이야기는 새롭게 세워진 믿음이 상황의 끝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신뢰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5:21-43)
하인리히 불링거는 신자의 인내가 세상이 주는 낙관과는 다른 뿌리를 가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참된 인내가 상황의 호전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에 근거한다고 가르쳤으며, 이 믿음이야말로 죽음처럼 보이는 상황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의 근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 해설』, 하인리히 불링거, Froschauer, 1566, p. 77)
❓ 성도님들의 삶에 "이미 늦었다"는 소식처럼 들리는 상황이 있습니까?
❓ 야이로처럼 상황이 끝났다는 말을 들은 순간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 수 있습니까?
● 하나님께는 죽음처럼 보이는 소식조차 마지막 단어가 아닙니다.
● 두려움이 몰려오는 그 순간이야말로 믿음이 가장 크게 자라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 우리는 상황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지막 기준으로 삼습니다.
★ 두려워하지 않고 믿기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손을 내미십니다.
죽음처럼 보이는 소식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 믿음은 하나님과의 정렬에서 흘러나오는 신뢰입니다.
⑦ 에필로그 : 더딜지라도 계속 기다리라
하박국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박국은 자신의 파수대에 서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이 본문에서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표현은 인간의 체감 시간과 하나님의 정한 때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지체가 결코 거짓이나 실패가 아님을 확언합니다. 예언자의 인내는 침묵을 견디는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적극적으로 신뢰하는 행위였습니다.
(WBC, 오바댜-스바냐, 랄프 스미스, Word Books, 1984, p. 106)
하박국은 시대의 불의와 폭력을 보며 하나님께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곧바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박국은 자신의 파수하는 곳에 서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은 묵시를 주시며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명하셨고, 반드시 응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결국 하박국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밭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하박국의 인내는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인내가 아니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내로 성숙해 갔습니다.
(하박국 3:17-18)
리처드 십스는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의 비유를 다루며, 하나님이 지체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부드럽게 다듬으시는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신자가 낙심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상황이 곧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상한 갈대』, 리처드 십스, Puritan Reprints, 1630, p. 34)
❓ 성도님들은 파수대 위에서 기다리는 하박국처럼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을 지켜볼 수 있습니까?
❓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할 수 있는 믿음이 성도님들 안에 있습니까?
● 정한 때는 반드시 이르며 결코 거짓되지 않습니다.
● 더딤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성숙해 가는 과정입니다.
★ 우리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오늘도 즐거워합니다.
★ 정한 때가 이를 때까지 우리는 파수대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습니다.
⑧ 비전으로의 초대 : 성공할 때까지, 그 다음에 보이는 것
마가복음 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바디매오를 향한 무리의 꾸짖음은 그가 소리치는 것을 부적절하게 여긴 사회적 압력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압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마가는 이 대조를 통해 참된 믿음이 주변의 반응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갈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NICNT, 마가복음, 윌리엄 레인, Eerdmans, 1974, p. 384)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맹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그는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려 했지만, 그는 더욱 크게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부르라 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시자 그는 보기를 원한다고 답했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길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침묵당해야 할 순간에, 바디매오는 끝까지 소리치는 쪽을 택했고, 결국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0:46-52)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의 시력 회복이 단순한 육신의 치유를 넘어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회복을 상징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참된 비전이란 세상의 무리가 침묵을 강요할 때에도 하나님을 향해 계속 부르짖는 자에게 열리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신학강화집』,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380, p. 61)
❓ 성도님들의 삶에서 성도님들을 잠잠하게 만들려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 모퉁이 너머의 성공처럼, 지금 성도님들이 아직 보지 못한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 무리의 꾸짖음보다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더 크게 울릴 때, 예수님은 반드시 걸음을 멈추십니다.
●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모퉁이 너머에 성도님들을 위한 시야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 우리는 침묵하라는 세상의 소리보다 크게 하나님을 부르며 나아갑니다.
★ 우리는 반드시 모퉁이 너머의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 우리는 성공할 때까지 계속합니다. 이는 근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정렬로 계속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눈이 열린 것은 그의 근성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정렬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눈도 그렇게 열릴 것입니다.
⑨ 축복의 선포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라 — 이 말씀을 사랑하는 이 자리의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선포합니다.
지금 몇 개의 모퉁이가 남았는지 알지 못해 지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반드시 이를 것을 선포합니다. 자기 힘으로 버티다가 소진된 이들에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드는 믿음이 회복되기를 선포합니다. 이미 늦었다는 소식에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그 음성이 오늘 성도님들의 마음에 임하기를 선포합니다. 세상의 꾸짖음이 성도님들의 부르짖음을 막으려 할 때, 더욱 크게 하나님을 부를 담대함이 있기를 선포합니다. 이 모든 인내가 자기 힘의 근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정렬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께서 성도님들의 걸음을 지키시고, 정한 때에 반드시 모퉁이 너머의 은혜로 인도하실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선포합니다. 아멘.
나는 눈앞의 결과 때문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길이라면,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겠습니다.
⑩ 찬송가 6곡
한국 찬송가 (새찬송가 2006년 개정판 · A-26 검증완료)
1.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2. 479장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3.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한국 CCM
4.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마커스
국제 CCM
5. 「Way Maker」 — Sinach
독일 CCM
6. 「선한 능력으로 (Von guten Mächten)」 — 디트리히 본회퍼 시 / 지크프리트 피에츠 곡
⑪ 참고문헌
1. BECNT, 갈라디아서, 토마스 슈라이너, Baker Academic, 2010
2.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Bibliotheca Augustiniana, 397
3. PNTC, 누가복음, 제임스 에드워즈, Eerdmans, 2015
4.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Simpkin Marshall, 1927
5. NICNT, 마태복음, R.T. 프랜스, Eerdmans, 2007
6. 『영적 침체』, 마틴 로이드존스, Pickering & Inglis, 1965
7. BECNT, 마가복음, 로버트 스타인, Baker Academic, 2008
8. 『신약신학』, 아돌프 슐라터, Calwer Verlag, 1909
9. NICNT, 마가복음, 윌리엄 레인, Eerdmans, 1974
10. 『제2스위스 신앙고백 해설』, 하인리히 불링거, Froschauer, 1566
11. WBC, 오바댜-스바냐, 랄프 스미스, Word Books, 1984
12. 『상한 갈대』, 리처드 십스, Puritan Reprints, 1630
13. 『신학강화집』,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380
14. NICOT, 창세기(보충 참고), 존 스칼렛, Eerdmans, 1990
15. NIGTC, 마가복음, 로버트 건드리, Eerdmans, 1993
16. TOTC, 하박국, 데이비드 베이커, IVP, 1988
17. 『기독교강요』(교리적 배경 참고), 장 칼뱅, Ioannis Calvini, 1559
18. Anchor Bible, 마가복음, C.S. 만, Doubleday, 1986
19. Hermeneia, 누가복음(참고), 프랑수아 보봉, Fortress Press, 2002
20.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상인』(자료 배경 참고), 오그 만디노, Frederick Fell Publishers, 1968